디지털 사망 이후의 비즈니스 – ‘디지털 유산 스타트업’의 부상
죽음은 더 이상 단절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현대인은 생전에 수많은 디지털 흔적을 남긴다. 이메일, 클라우드 문서, 사진과 영상, 소셜미디어 기록, 금융 계좌까지 모두가 생전의 삶을 구성하는 하나의 자산이 되었다. 이러한 데이터는 사망 이후에도 그대로 온라인에 남아 있게 되며, 법적 소유권, 접근권, 삭제 여부를 둘러싼 사회적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디지털 유산(Digital Legacy)’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부상하고 있고, 이 개념을 비즈니스로 확장한 스타트업들이 주목받고 있다.
디지털 유산 스타트업들은 주로 고인의 데이터를 정리하거나, 감정을 담은 메시지를 유족에게 전달하거나, 더 나아가 고인의 인격을 AI로 복원하는 서비스까지 제안한다. 과거에는 단순한 계정 정리에 불과했던 작업이, 이제는 추모와 감정 연결의 통로로 자리 잡으며 상업적 가치를 갖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기업들은 정서적 니즈를 해결하는 동시에 실질적인 문제 해결 수단을 제공함으로써 투자자와 사용자 모두에게 강한 설득력을 발휘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이 시장은 빠르게 성장 중이며, 포브스와 CB Insights 등에서 디지털 유산 스타트업을 주목할 분야로 반복해서 언급하고 있다. 특히 팬데믹 이후 죽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변화하면서 관련 서비스의 필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고인의 감정을 전달하는 플랫폼 – SafeBeyond의 구독 기반 수익 모델
이스라엘의 스타트업 SafeBeyond는 '디지털 타임캡슐'이라는 개념을 세계 최초로 구현한 기업 중 하나다. 사용자는 생전에 영상, 음성, 텍스트 형태의 메시지를 남기고, 이를 특정 이벤트—예컨대 자녀의 생일이나 졸업식, 결혼식—에 맞춰 자동 전달하도록 설정할 수 있다. 단순한 데이터 보관이 아닌, 정서적인 연결을 기술적으로 구현한 것이다. 유족은 예기치 못한 순간에 고인의 목소리나 응원을 받을 수 있고, 이는 큰 감정적 위로가 된다.
SafeBeyond의 수익 구조는 기본적으로 구독 기반이다. 누구나 무료로 서비스를 시작할 수 있지만, 메시지 저장 용량을 늘리거나, 고해상도 영상을 업로드하거나, 다양한 전달 조건을 설정하고 싶다면 유료 플랜에 가입해야 한다. 다시 말해, 더 많은 기능을 이용하고 싶을 때 소액을 주기적으로 내는 방식이다. 여기에 장례 서비스 회사나 보험사와의 제휴를 통해 상품화도 진행되고 있다. 예를 들어 생명보험 계약 시 함께 제공되는 부가 서비스로 포함되기도 한다.
SafeBeyond는 이러한 감정 중심 서비스에 '반복적으로 비용을 지불하며 사용하는 구조'를 도입해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하고 있으며, 현재는 북미, 유럽, 아시아 지역으로 서비스를 확장 중이다. 글로벌 투자자들로부터 수차례 펀딩에 성공했으며, “죽음 이후에도 삶의 흔적을 이어주는 기술”이라는 브랜드 메시지로 사용자층을 꾸준히 넓히고 있다. 2024년 기준 누적 가입자 수는 50만 명을 넘겼고, 사용자 만족도도 높은 편이다.
디지털 계정 정리의 현실적 솔루션 – GoodTrust의 법률 기반 플랫폼
미국의 스타트업 GoodTrust는 디지털 유산을 보다 실용적인 관점에서 다룬다. 사람이 사망하면 대부분의 온라인 계정은 접근이 불가능해진다. 비밀번호가 없거나, 본인 인증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가족들은 고인의 SNS 계정이나 클라우드 파일을 확인하거나 삭제하지 못해 혼란을 겪는다. 이 과정은 때때로 법적 분쟁으로도 이어진다. GoodTrust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망자의 계정 정보를 사전에 정리하고, 사망 시 가족이 합법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플랫폼을 운영한다.
이 기업의 핵심 서비스는 ‘디지털 유언장’이다. 사용자는 생전에 본인의 주요 계정 정보를 등록하고, 특정한 사람을 대리인으로 지정해 둔다. 사망 사실이 공식적으로 확인되면, 이 대리인은 GoodTrust 시스템을 통해 관련 계정을 정리하거나 삭제할 수 있다. 이 시스템은 개인정보 보호와 법적 정당성 모두를 고려해 설계되었으며, 미국 내 다수의 로펌 및 보험사와 제휴하고 있다.
GoodTrust의 수익 모델은 연간 요금을 받는 구독제와, 서비스 사용 시 추가로 요금을 부과하는 방식이 병행된다. 또한 법률 API를 기업 고객에게 제공하면서 B2B 시장에서도 확장 중이다. 이 기업은 “미정리된 계정이 유가족에게 법적·금융적 리스크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투자자들을 설득했다. 2023년 기준으로는 북미를 중심으로 약 70만 명의 사용자를 확보했으며, 현재 유럽과 아시아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빠르게 확대되는 디지털 생애 관리 시장에서 GoodTrust는 실용성과 신뢰성을 모두 갖춘 모델로 자리 잡고 있다.
인간의 기억을 복원하는 기술적 상상 – Eternime의 실패와 의미
Eternime은 디지털 유산 스타트업 중에서도 가장 독창적인 비전을 제시한 기업이었다. 이들은 생전의 SNS 기록, 대화, 사진, 영상 등을 바탕으로 AI가 고인의 인격과 유사한 챗봇을 만들어, 사후에도 가족과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를 개발했다. 마치 '디지털 영혼'을 만드는 듯한 이 서비스는 큰 화제를 모았고, 기술적으로도 주목받았다. 초기에는 많은 기대를 받았으며, 수만 명이 사전 등록을 했고 미디어의 관심도 컸다.
그러나 Eternime은 상용화에 실패했다. 개인 정보 보호, 기술적 윤리, 심리적 영향 등 여러 복잡한 문제들이 얽혀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죽은 사람을 AI로 재현한다’는 행위는 유족에게 위로가 될 수도 있지만, 오히려 고통이 되거나 고인의 이미지가 왜곡될 위험도 내포하고 있었다. 이러한 윤리적 문제 외에도, 챗봇이 인간의 정서를 완벽히 재현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지적되며, 최종적으로는 자금난과 시장 부재로 폐업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Eternime이 남긴 유산은 크다. 이후 AI를 이용한 추모 챗봇, 메타버스 기반 장례식, 음성 복원 서비스 등 유사한 시도들이 등장했고, ‘기억의 기술적 재현’이라는 새로운 영역이 열린 것이다. 단순히 계정을 정리하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기술이 인간의 존재와 기억을 어떻게 재해석할 수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를 끌어낸 점에서 의미가 깊다.
기억을 재현하려는 기술의 도전 – Eternime의 실험과 지금의 가능성
2014년, 미국 MIT 출신의 미로슬라브 밀로바노비치(Miro Kaz)는 하나의 대담한 아이디어를 세상에 제안했다. 사람이 죽은 뒤에도 생전의 SNS 기록, 이메일, 대화 내용, 사진과 영상을 기반으로 고인의 성격과 말투를 반영한 AI 챗봇을 만들어, 유족과 대화를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 바로 디지털 불멸(digital immortality)의 구현이었다. 이 아이디어는 곧바로 큰 반향을 일으켰고, ‘Eternime’이라는 이름의 스타트업으로 실현되기 시작했다. TED, WIRED, TechCrunch 등 세계적인 매체들이 이 실험적인 프로젝트에 주목했고, 수만 명이 서비스 사전 등록에 참여하며 기대를 나타냈다.
하지만 Eternime은 끝내 정식 서비스를 출시하지 못한 채, 약 6년간의 개발을 거쳐 2020년경 조용히 프로젝트를 종료했다. 공식적인 폐업 발표는 없었지만, 홈페이지와 SNS 채널은 닫혔고, 더 이상 서비스는 운영되지 않는다. 이유는 단순했다. 기술이 준비되지 않았고, 감정이 따라오지 못했다.
당시 AI 기술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초기 단계였다. GPT-3조차 세상에 나오기 전이었으며, 자연어 처리는 단편적인 응답 생성에 그쳤다. 복잡한 맥락을 이해하거나, 사람 고유의 말투와 표현을 정교하게 반영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고인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인격적인 AI를 구현하려는 시도는 이상적이었지만, 결과는 기술적 허점이 많고 어색한 ‘로봇화된 유사 인격’에 지나지 않았다. 여기에 고인의 이미지가 왜곡될 수 있다는 우려, 개인정보 보호와 감정적 충격에 대한 논란도 더해지며, 투자자와 사용자 모두가 점차 이탈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 2025년 현재,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GPT-4와 GPT-4o와 같은 초거대 언어모델은 감정, 맥락, 말투, 표현 방식까지 학습하고 재현하는 데에 있어 과거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으로 진화했다. 수천 건의 SNS 포스트, 메시지, 이메일 기록 등을 기반으로 특정 인물의 말투를 구현하고, 상황에 맞는 대화를 구성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여기에 음성 합성(TTS), AI 아바타, 메타버스 공간 기술이 융합되면서, 과거에 이상으로 여겨졌던 디지털 존재의 복원이 기술적으로는 손에 닿는 위치까지 다가왔다.
그러나 기술이 가능하다고 해서 반드시 실현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고인의 기억을 복원한다는 행위는 단순한 기능적 구현을 넘어선, 정서적이고 윤리적인 영역이다. AI가 만들어낸 ‘디지털 고인’이 실제 유족에게 위로가 될 것인지, 혹은 반대로 상실의 감정을 되풀이하게 만드는 고통이 될지는 단순히 기술의 정교함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사람마다 애도 방식이 다르고, 기억의 무게 또한 다르기 때문에, 이 서비스가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기술 이상의 감수성과 신중함이 필요하다.
Eternime의 실험은 실패했지만, 그 도전은 디지털 유산 산업에 큰 질문을 던졌다. 우리는 기술로 ‘기억’을 복원할 수 있는가? 그리고 복원된 기억은 과연 살아있는 기억인가, 혹은 가공된 또 다른 상실인가? 이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며, 지금도 수많은 연구자와 스타트업이 그 해답을 찾아가고 있다. 디지털 유산의 미래는 단순한 데이터 정리를 넘어서, 기억의 형태를 설계하고 감정을 다루는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그리고 이제, 그 중심에는 기술뿐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깊이 이해하는 ‘디자인’이 필요하다는 점이 분명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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