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선택의 시대, 우리는 정말 ‘스스로’ 고르고 있을까
오늘날의 사회는 ‘선택’으로 가득 차 있다. 점심 메뉴를 고를 때도, 쇼핑몰에서 옷을 고를 때 도, 유튜브에서 영상을 선택할 때도 우리는 ‘나의 선택’이라고 믿는다. “이건 내가 좋아서 고 른 거야.”라는 말은 너무 자연스럽다. 그러나 이 말은 과연 얼마나 진실일까? 스마트폰 속 세 상은 무한한 자유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보이지 않는 구조 속에서 작동한다. 심리학자 배리 슈워츠는 『선택의 역설(The Paradox of Choice)』에서, 선택이 많을수록 인간은 오히려 불안 과 피로를 느낀다고 말했다. 수많은 옵션이 주어진 시대에, 우리는 진짜 자유로워졌을까, 아니 면 오히려 ‘선택의 피로’ 속에 길을 잃은 걸까. 예를 들어보자. 오늘 점심으로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다가, 인스타그램 피드에서 뜬 “지금 가 장 인기 있는 파스타 맛집” 광고를 보고 그 가게로 간다. 우리는 ‘내가 고른 식당’이라 생각하 지만, 사실은 알고리즘이 보여준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른 것뿐이다. 나의 자유의지는 이미 그 ‘노출’의 단계에서 영향을 받았다. 즉, 선택은 나의 의식적 결정이 아니라, 누군가가 설계한 환경 속에서 일어난 반응일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구조는 단순한 기술적 문제를 넘어 인간의 사고방식까지 바꾸고 있다. 정보의 홍수 속 에서 인간은 ‘편리함’을 이유로 스스로 판단하는 과정을 포기한다. 검색창에 직접 입력하지 않 아도 되는 세상, 누군가가 대신 정리해주는 세상은 분명 편리하지만, 동시에 생각하는 능력을 조금씩 약화시킨다. 우리는 스스로 선택하는 존재라기보다, 선택지를 받아들이는 존재로 진화 하고 있는 것이다. 자유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 자유의 범위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2. 알고리즘은 우리보다 먼저 ‘나’를 안다
넷플릭스가 다음에 볼 영화를 추천하고, 유튜브가 ‘지금 나에게 꼭 맞는 영상’을 띄워주며, 틱 톡이 5초 만에 관심 있는 콘텐츠를 찾아낸다. 놀랍게도 이 추천들은 상당히 정확하다. 마치 내 머릿속을 읽는 듯한 정교함이다. 하지만 그 편리함 뒤에는 우리의 ‘선호 데이터’가 실시간 으로 수집되고 분석되는 거대한 체계가 있다. 알고리즘은 사용자의 클릭, 시청 시간, 스크롤 속도, 머무는 시간까지 기록한다. 넷플릭스는 ‘시청 종료 시점’을 분석하여, 어떤 장면에서 사 용자가 흥미를 잃는지 추적한다. 유튜브는 내가 멈춘 영상의 몇 초 장면까지 분석해 비슷한 패턴의 영상을 이어서 보여준다. 이러한 과정은 나의 무의식적 행동까지 데이터로 바꿔, ‘예측 가능한 인간 모델’을 만든다. 즉, 알고리즘은 나보다 나를 더 잘 안다. 내가 아직 “무엇을 보고 싶은지” 스스로 깨닫기도 전에, 이미 시스템은 ‘내가 좋아할 만한 것’을 예측한다. 이때 인간의 선택은 예측된 경로 위 에서만 이루어진다. 보이지 않는 필터 버블(filter bubble)은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방식으 로 세상을 좁힌다. 편리함은 분명 존재한다. 우리는 수많은 정보 중에서 피로하지 않게, 빠르 게 원하는 것을 얻는다. 그러나 동시에 ‘다른 가능성’은 점점 사라진다. 우리가 탐색하지 않은 세계, 다른 의견, 새로운 취향은 점점 더 멀어진다. 알고리즘은 ‘나를 만족시키는 것’만 남기 고, ‘나를 바꿀 가능성’을 차단한다. 그 결과, 개인의 취향은 더 깊어지지만 세상은 점점 더 단조로워진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의 콘텐츠, 나의 생각과 일치하는 주장만이 눈앞에 펼쳐진다. 그것은 ‘확증편향의 함정’이자, 개 인화의 역설이다. 인간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며, 들리고 싶은 이야기만 듣는다. 그때의 ‘추천’은 단순한 편의 기능이 아니라, 사고의 지평을 결정하는 통제 메커니즘이 된다. 알고리 즘은 중립적인 도구가 아니라, 인간의 인식 구조를 설계하는 ‘보이지 않는 편집자’로 자리 잡 았다.

3. 자유의지인가, 설계된 결정인가
철학자 스피노자는 “인간은 자신이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원인에 의해 움직이는 존재”라고 말했다. 이 문장은 21세기 디지털 환경에서 더욱 실감난다. 추천 알고리즘은 보이 지 않는 ‘원인’으로서 우리의 행동을 설계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자유의지는 사실 ‘선택의 다 양성’이 아니라 ‘선택의 기원’에서 판가름 난다. 내가 스스로 떠올린 생각인가, 아니면 누군가 가 제시한 것인가? 진짜 자유의지는 ‘선택지가 어디서 비롯되었는가’를 묻는 질문이다. 하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선택지는 이미 시스템이 선별한 결과물이다. 예를 들어, SNS에서 ‘이 사람을 팔로우해보세요’라는 제안이 뜨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클릭한 다. 새로운 연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알고리즘이 ‘나와 유사한 사람들’을 기반으로 만든 관계 추천이다. 사랑, 취향, 정치적 신념까지도 ‘추천 기반의 만남’ 속에서 형성된다면, 그때의 선택은 진정 나의 것일까? 인간은 자신이 결정을 내렸다고 믿지만, 사실은 ‘노출된 환경’ 안에 서만 반응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가 마주하는 화면의 순서, 광고의 위치, 추천 콘텐츠 의 노출은 모두 설계된 환경적 장치이기 때문이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인간은 이러한 설계된 결정에 저항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알고리즘은 우 리의 감정적 패턴—좋아요를 누르는 시점, 머무는 시간, 분노의 반응—을 이용해 ‘참여율’을 높인다. 이 과정은 우리가 자유롭게 행동한다고 느끼게 하지만, 실제로는 행동을 ‘유도’하는 정교한 환경 조성이다. 다시 말해, 자유의지는 점점 ‘감정의 알고리즘화’ 속으로 흡수되고 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스스로를 자유롭다고 믿는다. 그것이 이 시대의 가장 완벽한 환상이다. 이제 자유란 단순히 ‘선택할 수 있음’이 아니라, ‘선택의 기원을 되돌아볼 수 있는 능력’으로 재정의되어야 한다. 추천 시스템이 보여주는 화면 앞에서 ‘왜 이것이 나에게 보였을까’를 질문 할 수 있는 사람만이 진정 자유로운 인간이다.
4. 선택의 흔적이 남긴 디지털 유산
우리가 클릭한 모든 것, 시청한 영상, 멈춘 순간, ‘좋아요’를 누른 기록은 모두 데이터가 되어 남는다. 이 데이터는 개인의 기억이 아니라, 알고리즘이 설계한 ‘행동의 흔적’이다. 죽음 이후 에도 이 기록은 사라지지 않는다. 페이스북 추모 계정, 유튜브 추천 기록, 인스타그램 피드의 흔적들은 나의 의도와 상관없이 계속 작동한다. 이는 단순한 기술 현상이 아니라, 새로운 형 태의 디지털 유산(digital legacy) 이다. 과거의 유산이 ‘내가 남긴 물건’이었다면, 오늘날의 유산은 ‘내가 남긴 선택들’이다. 그러나 그 선택이 나의 자유의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어떤 의미의 ‘자기 자신’을 남기고 있는 것일까? 알고리즘이 만든 유산은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대신 설명하는 가장 강력한 증거가 된다. 유튜 브가 나의 시청 이력을 통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고, 음악 플랫폼은 내 감정의 리 듬을 기록한다. 미래의 인공지능이 나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나를 복제할 때, 그 ‘디지털 나’는 과연 진짜 나일까, 아니면 시스템이 설계한 또 하나의 산물일까? 디지털 유산이 단순히 과거 의 기록이 아니라, 미래의 ‘재현 가능한 나’로 이어진다면, 자유의지는 사라지고 데이터가 인 간을 정의하게 된다. 결국 ‘자유의지의 유산’이 사라지고 ‘알고리즘의 유산’이 남는다면, 우리는 기술의 편리함과 맞바꾼 인간성의 일부를 잃게 된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진정한 자유는 데이터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를 ‘자각적으로 선택’하는 데서 시작된다. 내가 클릭하는 순간마다, 누가 먼저 제안했는지를 스스로 물을 수 있다면, 그때의 선택은 다시 나의 것이 된다. 그 질문이 쌓일 때 우리는 비로소 알고리즘에 종속되지 않는 존재가 된다. 그러한 자각의 누적이야말로, 알고리즘 시대의 가장 고귀한 디지털 유산이며, ‘생각하는 인간’이 남길 수 있는 마지막 자유 의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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