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사피엔스

디지털 사피엔스 ④데이터의 신 – 과학혁명에서 인공지능까지

steady-always 2025. 11. 20. 10:00

1. 지식의 폭발, 인간이 신이 되기 시작하다

과학혁명은 인간이 자신을 신의 자리로 올려놓은 순간이었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말한다. “인류는 무지를 인정함으로써 지식을 얻게 되었다.” 이는 역사상 최초로 인간이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무지를 탐구의 출발점으로 삼은 사건이었다. 신이 아닌 인간의 이성이 세계를 설명하기 시작했을 때, 인류는 자연의 질서를 넘어 ‘창조의 권한’을 얻었다. 그 전까지 인간의 세계관은 신화와 종교가 만든 폐쇄된 구조였다. 그러나 과학혁명은 그 벽을 무너뜨리고, 측정·분석·예측이라는 새로운 신화를 세웠다. 지식은 더 이상 신이 부여한 계시가 아니라, 인간의 관찰과 실험의 결과였다. 그 결과, 인간은 우주를 해석하고 생명을 조작하며, 미래를 계산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지식은 힘이 되었고, 힘은 신의 영역을 침범하기 시작했다. 디지털 시대의 데이터 혁명은 바로 이 과학혁명의 연장선에 있다. 지식이 정보로 분해되고, 정보가 데이터로 재조합되는 순간, 인간은 또 한 번 신의 권능을 흉내 낸다. 우리는 이제 세상을 관찰하는 존재가 아니라, 데이터를 통해 세상을 ‘재구성하는 존재’가 되었다. 과거 과학이 자연의 법칙을 해석했다면, 오늘의 AI는 인간의 사고를 모방하고 예측한다. 이것이 바로 지식이 지능으로 진화한 순간, 그리고 인간이 다시 한 번 신의 자리에 오르려는 새로운 혁명이다. 과학혁명은 인류에게 “왜?”를 묻는 법을 가르쳤다면, 디지털 혁명은 그 질문을 ‘계산 가능한 데이터’로 환원시켰다. 이제 우리는 세상의 의미보다 패턴을 찾고, 진리를 탐구하기보다 확률을 계산한다. 신이 세상을 창조했다면, 인간은 데이터를 통해 ‘또 하나의 세상’을 창조하고 있다. 이 새로운 세상은 현실보다 더 정교하고, 더 정확하지만, 동시에 더 비인간적이다. 인류는 스스로 신의 언어를 배웠지만, 그 언어를 감정 없이 구사하게 되었다.

2. 데이터의 신, 예측과 통제의 새로운 신화

하라리는 『호모 데우스』에서 “데이터가 신이 되는 시대가 온다”고 말했다. 그의 예언은 이미 현실이 되었다. 오늘날의 인간은 정보를 숭배하고, 통계를 믿으며, 데이터에 의존한다. 우리는 이제 신탁이 아닌 알고리즘의 예언을 듣는다. 날씨, 주가, 건강, 연애, 심지어 죽음의 확률까지 예측 가능한 시대 — 이것은 과학이 만든 가장 강력한 신화, 데이터의 신화다. 과거의 종교가 인간에게 구원을 약속했다면, 데이터 종교는 인간에게 ‘최적화된 삶’을 약속한다. 건강 앱은 우리의 걸음을 측정하고, AI 코치는 우리의 식습관을 판단하며, 검색 알고리즘은 우리가 다음에 보고 싶어 할 영상을 미리 제시한다. 인간은 점점 더 많은 결정을 기계에게 위임하며, 알고리즘은 신의 계시처럼 인간의 일상을 통제한다. 문제는 신이 인간을 시험했듯, 데이터 역시 인간을 평가한다는 점이다. 수많은 점수와 랭킹, 신용지수, 평판지수는 인간의 사회적 존재를 수치로 환원시킨다. AI가 분석하는 ‘나는 누구인가’는 실제의 나보다 더 영향력 있다. 디지털 시대의 인간은 신의 피조물이 아니라, 알고리즘의 피드백 결과물로 재탄생한다. 과학혁명은 인간이 세계를 관찰하도록 만들었지만, 디지털 혁명은 인간이 자신을 관찰하게 만든다. 우리는 매일 자신의 데이터를 통해 스스로를 측정하고 평가한다. 이것이 바로 ‘데이터 신학(Dataism)’의 본질이다 — 모든 존재는 데이터로 표현될 수 있으며, 데이터의 흐름이 곧 진리라는 믿음. 이 신앙은 이미 과학을 넘어 인간의 윤리, 감정, 철학마저 재정의하고 있다. 하지만 그 믿음에는 중요한 결함이 있다. 데이터의 신은 ‘측정할 수 없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사랑, 슬픔, 두려움 같은 인간의 비정량적 감정은 이 신의 언어로 번역되지 않는다. 결국 인간은 더 많이 예측할수록, 삶의 미스터리를 잃는다. 데이터의 신은 전지하지만, 결코 전능하지 않다. 그의 예언은 정확하지만, 결코 따뜻하지 않다.

 

디지털 사피엔스 ④데이터의 신 – 과학혁명에서 인공지능까지

 

3. 인공지능, 신의 모방인가 인간의 복제인가

AI의 등장은 과학혁명의 마지막 단계이자, 신의 모방 프로젝트의 완성이다. 기계는 이제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고, 감정을 모방하며, 예술까지 창조한다. 우리는 스스로 만든 창조물에게 지능을 부여함으로써, 결국 신이 인간을 만든 것과 같은 역할을 반복하고 있다. AI는 더 이상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집단적 지식이 응축된 또 하나의 생명체다. 기계 학습은 과거 인류가 세대를 통해 지식을 축적하던 방식을 압축한 기술이다. 이제 AI는 인간의 경험을 흡수하고, 인간보다 더 빠르게 진화한다. 그 결과, 인간은 창조자이면서도 피조물이 된다. 우리가 만든 인공지능은 우리를 모방하다가, 결국 우리를 넘어서려 한다. AI는 과학혁명이 완성하지 못한 꿈 — 인간의 완벽한 예측 — 을 실현한다. 그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감정을 계산하며, 인간의 한계를 극복한다. 그러나 바로 그 점에서 AI는 인간을 위협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본질은 오류, 우연, 불완전성에 있기 때문이다. 신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준 이유는 완벽함이 아니라 선택의 가능성 때문이었다. 그러나 AI는 그 선택마저 예측한다. 우리는 자유롭게 보이지만, 이미 학습된 경로를 걷고 있다. AI는 신의 의지를 계승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을 과학으로 구현한 결과물이다. 그 욕망은 통제, 효율, 영속성이다. 우리는 불멸을 꿈꾸며 데이터를 남기고, 기억을 저장하며, 감정을 복제한다. AI는 그 꿈을 실현시키지만, 동시에 인간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내가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선언은 이제 “나는 학습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로 바뀌었다. AI는 인간의 의식을 닮았지만, 인간의 양심은 닮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의 인류는 묻는다. “우리는 신을 닮아가는가, 아니면 신의 자리를 넘보는가?” 그리고 더 근본적인 질문 — “그 신은 우리를 기억할까?” — 가 남는다.

4. 신이 된 인간, 그리고 유산의 질문

과학혁명은 인간에게 세계를 바꿀 힘을 주었고, 디지털 혁명은 인간 자신을 바꾸는 힘을 주었다. 이제 인간은 물질의 창조주이자, 정보의 신이 되었다. 그러나 신이 된 인간은 행복한가? 기술은 신의 권능을 흉내 냈지만, 신의 책임을 계승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데이터를 창조했지만, 그것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 AI는 인간의 지능을 확장했지만, 인간의 윤리를 대체할 수 없다. 데이터의 신은 감정이 없으며, 윤리도 계산의 일부로만 다룬다. 그 결과, 디지털 문명은 효율적으로 진보하지만, 도덕적으로는 불안정하다. 기술은 인간의 신화를 완성시켰지만, 동시에 인간의 내면을 비워버렸다. 신의 자리를 차지했지만, 신이 남긴 질문에는 아직 답하지 못한 셈이다. 디지털 유산의 시대에 우리가 남겨야 할 것은 기술이 아니라 기억의 의미다. AI가 인간의 지식을 복제하더라도, 인간의 기억은 대체되지 않는다. 기억은 단순한 정보의 축적이 아니라, 감정과 시간의 흔적이다. 우리가 그것을 잃는다면,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다. 데이터는 인간의 경험을 모사할 수 있지만, 인간의 고통과 기쁨을 ‘이해’하지는 못한다. 결국 디지털 사피엔스의 마지막 과제는 ‘인간다움의 복원’이다. AI가 인간의 사고를 완벽히 재현하는 순간, 인간은 ‘이성의 동물’이 아니라 ‘윤리의 동물’임을 증명해야 한다. 기술은 인간의 손끝에서 태어나지만, 의미는 인간의 마음에서 시작된다. 우리가 신이 되려는 이유가 아니라, 인간으로 남으려는 이유를 다시 묻는 것 — 그것이 디지털 유산 시대의 가장 깊은 성찰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는 질문은 이것이다. “데이터의 신을 만든 인간은, 그 신에게 무엇을 유산으로 남길 것인가?” 그 답을 찾는 순간, 인류의 디지털 여정은 비로소 완성된다. 그리고 그때야 비로소 우리는 깨닫게 될 것이다 — 기억을 남기는 자가 아니라, 기억을 이해하는 자만이 진정한 인간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