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유산

AI가 유서를 쓰는 시대 – 디지털 유언장의 법적 효력과 윤리적 쟁점

steady-always 2025. 4. 16. 20:00

AI가 유서를 대신 쓰는 시대가 시작되다

최근 AI 기술이 발전하면서, 사람이 아닌 인공지능이 유언장을 작성하는 사례가 등장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유언장 AI’라는 서비스가 도입되어 사용자가 생전에 입력한 정보를 바탕으로 AI가 유서를 자동 생성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iFA 같은 기업이 AI 기반 유언장 작성을 돕는 ‘엔딩 노트’ 서비스를 출시했다. 미국 일부 주에서는 디지털 유언장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며, 블록체인 기반 전자 유언장 시스템을 개발하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AI에 유서를 부탁하는 경우는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 신체적 제한이 있는 사람들이다. 예를 들어, 중증 질환으로 인해 손으로 글을 쓸 수 없는 사람이나 언어적 표현이 어려운 환자들은 AI를 활용해 자신의 유언을 남길 수 있다. 둘째, 시간이 부족한 사람들이다. 바쁜 삶을 사는 현대인들은 생전에 체계적인 유언을 정리할 시간이 부족할 수 있으며, AI가 이 과정을 도와줄 수 있다. 셋째, 감정적으로 유언을 작성하기 어려운 사람들이다. 유언은 종종 감정적으로 힘든 과정이며, AI가 이를 도와주면 객관적이고 조리 있게 유서를 구성할 수 있다. 넷째, 법적 전문가의 도움 없이 유서를 만들고 싶은 사람들이다. 변호사나 공증인을 거치지 않고도 AI가 법적으로 유효할 가능성이 있는 문서를 작성해 줄 수 있다. 다섯째, 유서를 미리 준비하고 싶은 사람들이다. AI는 다양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여러 버전의 유언장을 생성하고 저장할 수 있어, 사용자들이 미리 대비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하지만 이러한 AI 유서가 법적으로 유효한가에 대한 논쟁이 시작되었다. 전통적인 유언장 작성 방식과 달리, AI가 생성한 문서는 작성자의 자율적 의사가 반영된 것인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으며, 각국의 법적 기준이 다른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AI가 유서를 쓰는 시대 – 디지털 유언장의 법적 효력과 윤리적 쟁점

디지털 유언장, 법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는 네바다, 인디애나, 애리조나 등 일부 주를 중심으로 ‘전자 유언장(E-Will)’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법적 기반이 마련되었다. 이들 주에서는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디지털 유서가 일정 요건을 충족할 경우, 전통적인 서면 유언장과 동일한 법적 효력을 갖도록 허용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디지털 전환 시대에 맞는 유언장 관리 방식을 제도적으로 수용하려는 시도의 일환이다.

일본에서는 ‘유언장 AI’라는 이름의 서비스가 등장해 주목받고 있다. 이 서비스는 사용자가 생전에 입력한 정보와 상황에 따라 AI가 유언장을 자동 생성하며, 여기에 공증 절차를 추가함으로써 법적 요건을 충족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AI가 생성한 유서가 단순한 추천이나 참고용 문서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효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한 점에서 기술과 제도가 유기적으로 결합한 사례라 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디지털 유언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일부 법무법인은 AI 기반의 유언장 생성 설루션을 연구 중이며, 온라인에서 작성된 유언장이라도 공증을 거칠 경우 법적 효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고령화와 1인 가구의 증가로 인해 비대면 방식의 유언장 작성 수요가 커지면서, AI 기술을 활용한 ‘엔딩노트’ 서비스도 점차 확대되고 있다.

 

아직 풀리지 않은 법적 쟁점들이 남아 있다

그러나 AI가 작성한 유언장을 둘러싼 법적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태다. 가장 먼저 제기되는 쟁점은 AI의 법적 책임 문제다. AI가 자동으로 생성한 유언장이 실제 작성자의 자율적 의사를 충실히 반영한 것인지 검증하기는 매우 어렵다. 특히 사용자가 입력한 데이터가 한정되어 있거나, 해석이 필요한 문맥에서 AI가 임의로 판단한 경우, 유언의 진정성이 의심받을 수 있다.

또한 국가별 법률의 차이 역시 중요한 장애 요소다. 예를 들어 유럽연합(EU)의 일반 개인정보보호법(GDPR)에서는 개인정보 보호를 강화하는 취지로, 사망자의 디지털 데이터를 일정 기간 이후 삭제하거나 접근을 제한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이러한 규정은 AI가 과거 데이터를 기반으로 유언장을 생성하는 경우, 개인정보 보호법과의 충돌을 일으킬 소지가 있으며, 법적 해석에 따라 AI 유서의 효력을 부정당할 가능성도 있다.

위변조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는 위험 요소다. AI가 생성한 디지털 유언장은 본질적으로 전자문서이기 때문에, 해킹이나 무단 편집, 데이터 위조에 취약하다. 특히 클라우드 기반으로 저장되는 경우, 보안 수준에 따라 외부 침입이나 내부 조작이 발생할 수 있으며, 유언장이 실제 당사자의 의사에 의해 작성된 것인지 증명하기가 어려운 문제가 있다. 이는 유언장 자체의 신뢰성과 법적 효력을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유족들의 신뢰 문제도 중요한 사회적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유족들은 AI가 생성한 유언장을 과연 ‘고인의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특히 생전에 직접 작성된 유언장과 AI 유언장이 내용상 충돌할 경우, 어떤 문서를 기준으로 법적 판단을 내려야 하는지도 불분명하다. AI가 특정 유족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문장을 구성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면, 가족 간 갈등은 더욱 심화될 수 있으며, 이는 유언의 공정성과 객관성이라는 핵심 가치를 훼손하게 된다.

 

AI가 인간의 마지막 말을 대신해도 되는가

AI가 작성한 유언장은 단순한 기술적 진보를 넘어, 인간의 마지막 선택에 기계가 개입한다는 점에서 중대한 윤리적 쟁점을 제기한다. 이는 단지 편의를 제공하는 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감정과 의지를 대변해야 하는 고유한 행위를 AI가 대신 수행하게 된다는 점에서 복잡한 물음을 남긴다.

가장 먼저 논의되어야 할 문제는 유언의 진정성이다. AI는 인간의 언어와 감정을 모방할 수는 있지만, 실제 감정을 ‘느끼는’ 존재는 아니다. 결국 AI가 작성한 유언장은 방대한 데이터를 조합해 생성된 문장일 뿐, 그것이 고인의 실제 감정이나 진심을 온전히 반영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유족들은 과연 그러한 유언장을 보며 고인의 마음을 느낄 수 있을까? 만약 AI가 사용자 의도를 잘못 해석하거나 편향된 알고리즘을 통해 유언 내용을 왜곡했다면, 그것은 고인의 의지를 오히려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가족 간 갈등과 법적 분쟁도 중요한 윤리적 문제로 대두된다. AI 유언장이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거나, 생전의 자필 유언과 충돌하는 경우, 유족들은 “과연 이 유언이 진짜 고인의 뜻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특히 AI의 알고리즘이 특정 유족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내용을 구성했다면, 이는 유산 분배를 둘러싼 갈등을 심화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공정성과 중립성을 보장할 수 없는 시스템에서 생성된 유언은 오히려 가족 사이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촉매제가 될 수 있다.

또한 데이터의 사후 관리 문제 역시 간과할 수 없다. AI가 작성한 유언장이 클라우드나 서버에 저장될 경우, 이 데이터에 누가 접근할 수 있으며, 어떻게 보호되는지에 대한 기준이 모호하다. 유언장의 내용을 기업이 보관하고 있다면, 빅테크 기업이 해당 데이터를 기반으로 사용자 프로파일링을 하거나, 마케팅에 활용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더불어, 유언장이 해킹이나 데이터 위조에 노출될 경우, 고인의 의지가 완전히 왜곡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한 기술적 보완 장치와 제도적 안전망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면, AI 유언장은 위험한 도구가 될 수밖에 없다.

결국 AI가 생성한 유언장은 법과 기술의 교차점에 위치해 있을 뿐 아니라, 인간 존재의 마지막 서사에 대한 윤리적 고민을 요구하는 지점에 놓여 있다. 이는 기술의 효율성만으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며, 인간 존엄과 감정, 관계를 어떻게 해석하고 존중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과 연결된다.

 

AI 유언장을 활용하기 위해 법과 감정을 함께 준비해야 한다

AI 유언장이 점차 현실화함에 따라, 이를 보다 윤리적이고 법적으로 안정적인 방식으로 활용하기 위한 구체적인 해결책과 제도적 대비책이 절실해지고 있다. 단순히 기술을 도입하는 것을 넘어, 인간의 감정과 법적 책임을 함께 고려하는 하이브리드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

우선, AI와 인간이 협업하는 방식의 도입이 중요하다. AI는 유언장의 초안을 작성하고, 사용자가 이를 검토·수정하는 구조를 갖추면, 효율성과 감성의 균형을 이룰 수 있다. 특히 AI가 작성한 문서를 법률 전문가가 검토하는 절차가 병행된다면, 법적 효력을 강화하고 책임 소재도 명확해질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사용자는 AI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마지막 말에 대한 통제권을 유지할 수 있다.

또한, 법적 규제의 정비와 국제적 표준화 작업도 시급하다. AI 유언장이 법적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공증 절차와 인증 시스템을 포함해야 하며, 국가마다 상이한 유언장 요건을 고려해 디지털 유언장에 대한 국제적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AI가 문서 생성 시 일정한 법적 기준을 충족하도록 설계된 알고리즘이 적용되어야 하며, 이는 단지 기술적 옵션이 아니라 법적 안정성을 위한 핵심 조건이 된다.

나아가 AI 유언장의 감성적 개선도 고려되어야 한다. 현재 AI는 주로 법적 문서 생성을 중심으로 작동하지만, 유언이란 단지 법률 문서가 아니라 한 인간의 삶과 감정이 담긴 마지막 기록이다. 따라서 AI가 사용자의 생전 기억, 영상, 음성 데이터를 함께 분석하여 보다 감정적으로 공감할 수있는 유언장을 작성할 수 있도록 연구가 필요하다. 예컨대, 고인의 실제 목소리로 유언을 전달하는 기술이 도입된다면, 유족은 단지 텍스트를 넘어서 **‘함께한 기억의 감정’**까지 전달받을 수 있을 것이다.

결국, AI가 유서를 대신 작성하는 시대가 열렸지만, 이것이 인간의 마지막 말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 AI 유언장은 분명 기술적으로 편리한 도구일 수 있지만, 그에 따른 법적·윤리적 문제를 방치한다면 오히려 가족 간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법적 인정, 감성적 보완, 윤리적 검토가 모두 병행되어야 하며, 무엇보다도 인간이 자신의 마지막 말을 어떻게 남길 것인지에 대한 결정권을 스스로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AI는 보조적 도구일 수 있을지언정, 인간의 감정과 기억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는 점을 기술 발전의 전제 조건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