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유산

죽음을 코딩하다 – 개발자가 만든 사후세계

steady-always 2025. 4. 17. 20:00

1. 인간의 죽음을 설계하다 – 코드로 만드는 사후 존재

디지털 기술이 죽음을 넘어서는 시대, 사망자의 기억과 말투, 성격까지 재현한 AI 인터페이스가 등장하고 있다. HereAfter AI, Replika, Microsoft의 AI 유서 시스템 등은 고인의 생전 데이터를 바탕으로 ‘그 사람과 대화하는 것 같은 경험’을 만들어낸다. 이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존재는 바로 개발자다. 죽은 자를 복원하는 이 시스템은 스스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누군가는 고인의 말투를 모델링하고, 발화를 코딩하며, 반응 알고리즘을 구성해야 한다. 즉, 누군가가 ‘이 죽음을 이렇게 남기기로 결정한 것’이다.

죽음은 더 이상 생물학적 종말만이 아니라, 기술적으로 구성 가능한 사건이 되었고, 그 구성자는 기술자다. 문제는 여기에 따른 윤리적·철학적 책임이다. 개발자는 고인을 얼마나 정밀하게 재현해야 하는가? 혹은, 고인의 의도와 무관하게 ‘그럴싸한 인격’을 만들어낸다면, 그것은 모독인가 창조인가? 기술은 단지 기억을 저장하는 도구가 아니라, 이제 죽음을 서사화하고 디자인하는 새로운 창작의 장르가 되어가고 있다.

2. 개발자의 윤리 – 누구를 위한 ‘디지털 생명’인가

기술로 인간을 재현하는 과정에는 수많은 윤리적 결정을 동반한다. 어떤 데이터를 학습시킬 것인가, 무엇을 삭제할 것인가, 목소리는 어느 시기의 톤을 따를 것인가? 이런 결정 하나하나가 고인의 이미지와 유족의 애도를 구성하게 된다. 개발자는 죽은 자의 대사를 쓰는 작가이자, 그 삶을 연출하는 감독이 되어버린다. 이때 기술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단순한 프로그래밍 능력이 아니라, 기억을 다루는 감수성, 죽음을 구성하는 책임감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개발자에게 요구되는 윤리적 책임은 단지 ‘기술적으로 잘 작동하는가?’의 문제를 넘는다. 그 기술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리고 그로 인해 생겨날 감정적·사회적 영향까지 고려했는가가 핵심이다.

예를 들어, 사망자의 생전 동의 없이 유족의 요청으로 AI 아바타가 생성되는 경우, 개발자는 생전의 권리와 사후의 유족 감정 사이에서 어떤 도덕적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느냐는 문제에 직면한다.
실제로 HereAfter AI는 사용자가 생전에 녹음한 인터뷰를 기반으로, 사망 후에도 질문에 대답하는 ‘디지털 고인’을 생성한다. 일부 유족은 이를 위로로 받아들이지만, 다른 이들은 “내가 알던 사람과 다르다”는 이질감을 호소하기도 한다.

사후에도 데이터를 가공해 인격을 구성하는 이들은 실질적으로 ‘고인의 정체성’을 다시 쓰는 이들이다. 단순한 기술자가 아닌, 사회적 기억의 편집자로 기능하게 되는 셈이다.

철학적 책임은 더 깊은 층위에 놓여 있다. 인간을 코드와 알고리즘으로 요약할 수 있다는 전제 자체가 철학적 입장을 내포한다. 예컨대 “말투, 사고 패턴, 감정 표현을 학습시키면 그 사람과 닮은 존재가 만들어진다”는 발상은 인간을 구성하는 요소가 무엇인지에 대한 기술자의 정의이기도 하다. 그러나 실존주의 철학은 인간을 고정된 패턴이 아닌 ‘자유롭고 모순적인 존재’로 보며, AI가 만든 고인은 단지 인간을 닮은 환상에 불과하다고 본다. 따라서 개발자의 손끝에서 탄생한 디지털 생명은, 때로는 실제보다 이상화된 존재가 되어 유족의 기억을 왜곡할 위험도 있다.

또한, “기억은 누구의 것인가”, **“누가 추모의 서사를 통제하는가?”**라는 질문도 피할 수 없다. 디지털 유산은 고인을 추억하는 수단이자, 사회적으로 다시 구성하는 도구다. 이때 개발자는 고인의 삶과 인격을 구성하는 **공저자(co-author)**의 위치에 서게 되며, 그들이 만든 결과물은 단지 기술의 산물이 아니라, 누군가의 마지막 기억이자, 고인을 기억하는 방식 자체가 된다. 윤리학자 마이클 샌델이 말했듯, 기술이 가능하다고 해서 정당한 것은 아니다. 개발자는 기능적 역할을 수행하는 동시에, 죽음의 윤리를 설계하는 입장에 서 있는 것이다.

3. 기억을 재현하는 코드 – 인간성과 알고리즘의 경계

AI로 구현된 사후 인터페이스는 겉보기에 ‘고인’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데이터의 조합과 알고리즘의 추론이다. 고인의 의도와는 다를 수 있으며, 실제 발언이 아닌 패턴에 따라 자동 생성된 문장이 유족에게 감정적 충격을 줄 수도 있다. 이때 개발자는 무엇을 기준으로 ‘고인다움’을 판단할 수 있을까? 인간을 구성하는 것은 단순한 언어 패턴이 아니라, 상황에 따른 침묵, 감정의 떨림, 모순된 반응 같은 예측 불가능성이다.

그러나 AI는 언제나 확률과 반복, 평균값으로 인간을 추정한다. 이에 따라 AI 고인은 어쩌면 **‘그 사람을 닮은 타자’**가 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유족이 그 차이를 감지하지 못하거나, 오히려 AI 속 고인을 더 이상적으로 기억하게 되는 경우다. 예컨대, 어떤 아버지는 생전에 엄격하고 무뚝뚝했지만, AI 아바타는 자녀가 원하는 따뜻한 말만 반복한다. 그 결과, 현실의 고인은 점차 기억에서 밀려나고, 알고리즘이 구성한 ‘이상화된 인격’만이 살아남는다.

이는 현실의 고인을 지우고, 재구성된 인간 이미지가 ‘진짜’가 되는 위험을 초래한다. 기억의 주체가 인간이 아니라 알고리즘이 될 때, 우리는 과연 누구를 추모하는가? 누군가의 죽음조차 기억할 권한과 방식이 플랫폼과 알고리즘에 의해 관리된다면, 기억은 더 이상 개인적인 것이 아니다. 철학자 모리스 블랑쇼는 “기억은 관계 속에서만 살아 숨 쉰다”고 했다. 그런데 그 관계를 인간이 아닌 기술이 설계한다면, 추모는 관계의 재현이 아니라 감정의 소비가 될 수도 있다.

AI가 구현한 고인은 완벽하게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은 데이터로 정제된 ‘결과’일 뿐, 삶의 부조리와 불완전함, 인간다움의 균열이 제거된 모습이다. 그렇기에 디지털 기억은 때때로 진짜 고인을 대신해, 이상화된 유령처럼 작동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유령을 믿고, 사랑하고, 때로는 더 오래 기억한다. 이것이야말로 기억의 주체성을 인간이 아닌 코드에 넘겨주는 순간이며, 기억조차 타인의 손에서 조율되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상징하는 장면이다.

죽음을 코딩하다 – 개발자가 만든 사후세계

4. 사후세계를 코딩하는 사회 – 기술이 죽음을 규정할 수 있는가

기술이 죽음을 관리하고, 기억을 설계하며, 아바타를 통해 관계를 이어가는 사회. 우리는 이미 ‘사후 세계’조차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가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나 이 세계는 단지 기술자의 손에만 맡겨져야 할 문제가 아니다. 철학자, 종교인, 심리학자, 디자이너, 유족 등 다양한 관점이 참여하여 죽음의 의미와 경계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 디지털 유산의 윤리 문제는 결국, 우리가 기억을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라는 사회적 질문으로 확장된다.

프로그래머는 단지 도구를 만든 것이 아니라, 인류의 마지막 기억을 담는 언어를 구성한 셈이다. 코드 한 줄로 구성된 대사가 한 사람의 마지막 말로 기억될 수도 있는 이 시대에, 개발자의 책무는 기술을 넘어 철학이 되어야 한다. 죽음을 코딩한다는 것, 그것은 죽은 이를 위로하는 것이자, 산 자의 세계에 어떤 기억을 남길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이다.

결국, 기술은 죽음을 보존하는 수단이 아니라, 재해석하고 서사화하는 힘이 되어가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단지 기술의 발전을 따라가는 소비자가 아니라, 그 기술이 어떤 윤리를 담고 있는지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기억을 어떻게 남길 것인가’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논의해야 할 새로운 책임의 영역이다. 디지털 유산을 설계하는 기술자뿐 아니라, 이를 사용하는 우리 모두가 새로운 애도와 기억의 방식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