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유산

디지털 인격의 시대, AI 아바타는 누구의 것인가?

steady-always 2025. 4. 16. 11:00

AI 아바타는 누구의 것인가 – 디지털 인격의 법적 주체 논쟁

HereAfter AI, Microsoft의 디지털 유서, Replika 등 다양한 플랫폼은 생전 데이터를 기반으로 AI 아바타를 만든다. 이들은 단순한 프로그램이 아닌, 고인의 말투, 성격, 감정까지 반영하여 살아 있는 듯한 존재처럼 작동한다. 기술이 한 개인의 정체성을 재현하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이를 단순한 도구로만 볼 수 없다. AI 아바타는 인간적인 반응을 보이며, 남은 이들과 정서적인 관계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아바타가 당사자의 생전 동의 없이 제작되었다면, 이는 인격권 침해로 해석될 수 있다. 반면, 이를 개발자의 창작물로 간주할 경우 전혀 다른 법적 해석이 가능하다. 문제는 현재의 법 체계가 이러한 ‘디지털 인격’을 명확히 규정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배우 윌리엄 섀트너가 생전에 자신의 인터뷰 데이터를 HereAfter AI에 제공해 스스로의 AI 아바타를 미리 제작한 사례가 있다. 이는 디지털 인격의 법적 정당성이 사전 동의 여부에 크게 달라진다는 점을 보여준다.

AI가 구현하는 디지털 인격은 단순히 개인의 복제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상호작용에도 영향을 미친다. 유가족은 이 아바타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며, 때로는 조언을 얻기도 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바타는 ‘기억의 매개체’를 넘어 ‘사회적 존재’로 기능하게 되며, 이로 인해 그 법적 지위는 단순한 소유권만으로 정의할 수 없는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된다.

 

기억의 상속자들 – 디지털 아바타를 둘러싼 가족 간 권리 갈등

현재 법은 사진, 편지, 저작물 등 고인을 추억할 수 있는 요소를 유산으로 취급하지만, AI로 구현된 아바타는 단순한 기록물이 아닌 고유한 정체성을 담은 존재다. 그렇다면 이 디지털 존재는 상속 가능한 자산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가족 구성원 간에 아바타의 소유권을 두고 의견이 충돌한다면, 법은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까?

실제로 2022년, 독일에서는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페이스북 데이터를 바탕으로 AI 아바타를 제작한 사례에서 가족 간 법적 분쟁이 벌어졌다. 한쪽은 이를 ‘디지털 추모’의 수단이라 보았고, 다른 쪽은 개인 정보 침해라 주장하며 삭제를 요구했다. 생전 의사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 AI 아바타는 추억의 전달자가 아닌 가족 간 갈등의 원인이 될 수 있다.

특히 유족 간 정서적 유대감의 차이가 클수록 이런 갈등은 심화되기 쉽다. 생전에 고인과 가까웠던 이들은 아바타에 강한 애착을 느끼며 이를 유지하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가족은 이를 단순한 데이터로 인식하고 제거를 요구할 수 있다. 이처럼 감정의 온도 차는 법으로 조율하기 어려운 영역이기에, 생전에 AI 재현에 대한 명확한 의사 표현이 중요해지고 있다. 일부 국가에서는 유언장에 AI 재현 여부를 포함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또한 기억의 방식은 가족마다 다르다. 어떤 이는 밝고 긍정적인 면만을 기억하고 싶어하지만, 다른 이는 고통스러운 과거를 회상하게 만드는 대화에 거부감을 느낄 수 있다. 아바타가 고인의 특정 성향만 반영한다면, 가족 간 기억의 균열이 심화되어 심리적 상처로 이어질 수 있다. 결국 디지털 아바타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가족 내 ‘기억의 정치’를 상징하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AI가 만든 말의 주인은 누구인가 – 생성형 콘텐츠의 저작권 쟁점

AI 아바타가 유족과 나누는 대화는 생전 데이터를 바탕으로 하지만, 실제 내용은 대부분 새롭게 생성된 문장이다. 이는 실제 유언도, 과거의 기록도 아니다. 알고리즘은 패턴을 조합해 마치 고인이 말한 것처럼 감정이 담긴 표현을 만들어낸다. 이처럼 생성형 표현은 단순한 데이터 재현을 넘어 창작의 영역에 포함될 수 있다.

예를 들어 Replika 앱에서는 고인의 말투를 학습한 AI로부터 “늘 네 곁에 있을게” 같은 감성적인 메시지를 받은 사례가 있다. 유족은 이를 마지막 말처럼 받아들이지만, 실제로는 알고리즘이 생성한 표현이다. 이는 위로가 되기도 하지만, 고인의 이미지나 가치관과 어긋나는 표현이 나올 경우 왜곡의 위험성도 존재한다.

이러한 생성형 콘텐츠가 외부에 퍼지고 상업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하면 법적 책임은 더욱 모호해진다. AI가 만든 문장이 책이나 방송, 유튜브 영상에 인용될 경우, 그 표현의 저작권은 누구에게 있는가? 고인의 것인가, 플랫폼의 것인가, 혹은 알고리즘의 산물로 볼 것인가? 이 문제는 단순한 저작권 논의를 넘어, 인격권과 창작권 사이의 복합적인 경계 문제로 이어진다.

특히 고인의 생전 기록물과 AI가 만들어낸 말이 구분되지 않는 경우, 사람들은 이를 실제 고인의 의사로 오해할 수 있다. 이러한 오용 가능성은 법적·윤리적 문제를 낳고, 특히 콘텐츠가 SNS나 유튜브 등에서 바이럴로 확산되면, 진짜와 가짜의 경계는 더욱 흐려진다. 디지털 시대의 표현은 기억의 재현이자 새로운 정체성의 구축이며, 이에 따른 법적 해석은 저작권을 넘어선 담론을 요구하고 있다.

 

기억은 누구의 권리인가 – 디지털 추모와 ‘기억의 주권’

AI 기술은 ‘기억’을 실시간으로 재현하며, 떠난 이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는 시대를 열고 있다. 과거에는 편지나 유품처럼 정적인 기억이 남았다면, 이제는 생전의 목소리와 말투로 조언을 해주는 아바타가 대화를 이어간다. 이러한 기술은 때로는 조용한 애도를 방해하거나, ‘잊혀질 권리’를 침해하기도 한다.

중요한 문제는 이 아바타가 누구의 동의로 제작되고 유지되는가이다. 2021년, 한 유튜버 팬이 해당 유튜버의 영상과 음성을 조합해 AI 콘텐츠를 무단 제작·공개한 사건은, 개인의 기억이 제3자에 의해 임의로 조작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유가족의 동의 없이 만들어진 콘텐츠는 ‘기억의 주권’이 누구에게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와 같은 상황은 기술의 발전 속도가 법적 규범보다 빠르다는 점도 드러낸다. 생전에 AI 재현을 원하지 않았더라도, 공개된 데이터가 존재하는 한 누구든 접근하고 조작할 수 있다. 이는 사적인 기억이 공공재처럼 소비되는 위험을 내포하며, 기억을 다루는 윤리적 규범의 재정립 필요성을 강조한다.

결국 우리는 단지 추모의 방식뿐 아니라, 누가 그 기억을 통제할 권리가 있는가, 그리고 기억을 어떻게 존중할 것인가에 대한 새로운 사회적 합의에 도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