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유산

디지털도 국보가 될 수 있는가 – 새로운 시대의 문화재를 말하다

steady-always 2025. 4. 22. 11:00

 

1. 시대는 바뀌었다, 국보도 바뀔 수 있을까? 디지털 문화재의 가능성

문화재는 단순히 오래된 유산이 아니다. 직지심체요절이나 훈민정음해례본이 국보로 지정된 이유는 그 자체가 시대의 기술과 철학, 집단 정체성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 사회의 정신과 감정은 어디에 남아 있는가? 더 이상 그것은 종이에 인쇄되지 않는다. 유튜브 속 한 장면, 국민청원에 남긴 댓글들,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기록된 시위 현장, SNS에 쏟아지는 감정의 글들이 오늘날의 문화와 시대를 가장 생생하게 담아낸다. 디지털 콘텐츠는 단순한 개인의 기록이 아니라, 하나의 집단적 기억이자 미래의 사회사적 자산이 될 수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디지털 국보혹은 디지털 문화재라는 개념은 더 이상 상상이 아닌, 현실적인 논의로 다가온다. 문화재의 본질은 기억하고 보존할 가치가 있는가에 달려 있다면, 디지털 콘텐츠도 그 정의 안에 포함될 자격이 있다. 팬데믹 시기 생중계된 온라인 공연, 시민들이 직접 참여한 국민청원, 실시간 영상으로 기록된 시위와 재난 대응 과정 등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감정, 집단행동, 기술 환경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디지털 흔적이 실제로 문화재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단순한 공감이나 인상 이상의 명확한 가치 판단 기준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어떤 콘텐츠가 문화재가 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다음으로 이어진다.

 

 

2. 어떤 콘텐츠가 문화재가 될 수 있을까? 디지털 유산의 평가 기준

디지털 콘텐츠가 문화재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명확한 평가 기준이 필요하다. 문화재청은 현재 유형·무형 문화재를 지정할 때 역사성, 예술성, 상징성, 희소성, 재현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이 기준은 디지털 콘텐츠에도 충분히 적용 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인기를 끈 콘텐츠가 아니라, 시대를 대표하고 해석할 수 있는 핵심적 의미를 지닌 콘텐츠여야 한다는 점이다.

 

첫째, 역사성이다. 콘텐츠가 특정 시대를 설명하고, 당시 사람들의 감정과 사고방식을 담고 있다면, 그것은 사회사적 가치가 있는 기록이 된다. 예를 들어, 2020년 코로나19 초기 수많은 시민들이 국민청원 게시판을 통해 사회적 거리 두기, 재난 지원금, 의료 인력 처우 개선 등을 요구한 기록은 그 자체로 감염병 시대 한국 사회의 집단 반응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다.

 

둘째, 상징성이 중요하다. 하나의 콘텐츠가 단지 정보 전달을 넘어, 특정 문화나 사회 집단의 정체성을 대변할 수 있다면, 이는 문화재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BTS의 유튜브 라이브는 코로나로 인해 공연장이 사라진 시대에 대중과 예술이 만나는 새로운 방식이었고, 한국 대중문화가 전 세계에 감정적 공감을 전파한 사건이었다. 단순한 공연 실황이 아니라, 비대면 시대의 문화적 대응이자 한국 콘텐츠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사례인 것이다.

 

셋째, 고유성과 재현 불가능성도 고려되어야 한다. 수많은 SNS 기록이나 개인 영상들 중에는 해당 시점, 장소, 상황에서만 만들어질 수 있었던 유일무이한 정보들이 있다. 2016년 촛불집회 현장을 담은 시민 촬영 영상이나 그날의 SNS 기록은 현장의 공기, 목소리, 표정까지 담고 있어 단순한 사진이나 기사로는 대체 불가능하다. 이는 디지털 콘텐츠가 단지 이미지가 아니라, 실시간 감정의 기록이자 사회 운동의 정서적 문서라는 점을 보여준다.

 

이와 같이 살펴보면, 디지털 콘텐츠도 기존 문화재의 가치 기준에 부합하거나, 오히려 더 풍부한 사회적 의미를 지닐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시대성을 드러내는 방식이나, 당대의 감정 구조를 담는 힘은 기존의 문화재보다 더 생생하고 동적인 경우도 많다. 그러므로 이제는 단지 보존할 가치가 있느냐를 넘어서, 어떤 콘텐츠가 미래의 기억이 될 수 있는가를 고민하며 문화재 지정 기준을 디지털 환경에 맞게 확장할 필요가 있다.

디지털도 국보가 될 수 있는가 – 새로운 시대의 문화재를 말하다

3. 사라지기 쉬운 디지털 기록, 누가 어떻게 지켜야 할까? 공공 시스템의 역할

디지털 콘텐츠는 생성되기는 쉬워도, 지속적으로 존재하기는 어렵다. 대부분 특정 플랫폼에 종속되어 있고, 기업의 정책 변화나 서버 종료, 기술의 변화에 따라 쉽게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싸이월드 폐쇄, 구형 이메일 서비스 종료, 유튜브 콘텐츠 삭제 등으로 인해, 수많은 중요한 사회적 기억이 복구 불가능하게 소실되었다. 이처럼 디지털 콘텐츠는 그 가치가 아무리 높아도, 의도적인 보존이 없으면 유물로 남을 수 없다. 따라서 디지털 국보 지정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디지털 아카이브 시스템이 병행되어야 한다.

 

해외에서는 이미 이와 유사한 시도가 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은 주요 웹사이트와 온라인 게시물들을 정기적으로 저장해 웹 아카이브로 운영하고 있으며, 미국 의회도서관도 역사적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디지털 문서를 별도로 수집하고 있다. 한국도 국립중앙도서관이나 국가기록원이 디지털 자료 수집을 진행 중이지만, 그 대상은 대부분 공공기관 문서나 학술 정보에 한정된다. 대중문화 콘텐츠, 시민의 디지털 기록, 소셜미디어 기반 콘텐츠는 여전히 공공 보존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따라서 디지털 국보지정 제도가 도입된다면, 그에 따른 보존 전담 기구, 포맷 표준화, 장기 저장 기술 개발, 접근성 관리까지 포괄하는 종합적인 인프라 구축이 필수적이다. 이것이 단순한 기술적 관리가 아니라, 문화 자산을 다음 세대에 안전하게 물려주는 책임이라는 점에서 공공의 역할은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

 

4. 우리의 일상이 유산이 되는 시대 디지털 국보가 여는 기억의 미래

디지털 국보 제도의 도입은 단지 새로운 형태의 문화재를 추가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무엇을 유산으로 남길 것인가"에 대한 사회 전체의 기억 설계 방식 자체를 바꾸는 일이다. 기존의 문화재가 국가 중심, 전문가 중심, 엘리트 중심의 유산이었다면, 디지털 국보는 대중 중심, 시민 참여형, 실시간 형성이라는 전혀 다른 특성을 지닌다. 우리는 이제 누군가의 기록이 아니라, 집단이 함께 남긴 순간을 유산으로 간주할 수 있게 되었으며, 그 매개체는 실물 자료가 아니라 디지털 콘텐츠다.

 

이런 변화를 통해 디지털 국보는 미래 세대에게 단순한 정보가 아닌 사회적 감정, 시대정신, 문화적 상징을 전달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예술이든 정치든 일상이든, 콘텐츠가 공유되고 의미화되는 디지털 환경에서, 국보라는 개념은 더 이상 과거의 유산에 국한되지 않는다. 오히려 디지털 콘텐츠야말로 오늘날을 증언할 수 있는 가장 즉각적이고 진실한 매체일 수 있다. 디지털 국보는 문화적 자산을 보존하는 방식이자, 기억의 형식 그 자체를 전환하는 기획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 콘텐츠를 진지하게 문화재로 바라보는 시선과 사회적 공감대다. 국보란 원래 시대가 남기고 싶은 어떤 것을 국가가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제도다. 이제 그 시대는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언어로 기억되고 있다. 그 기억을 지키기 위한 시스템이 없다면, 우리는 결국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채 다음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