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죽음 이후에도 살아 있는 자산 – 디지털 유산의 경제적 전환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고 해서, 그가 남긴 흔적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 우리는 죽음을 기점으로 다시 살아나는 자산들을 목격하고 있다. 유튜브 채널, SNS 브랜드 계정, NFT와 같은 디지털 유산은 사망 이후에도 여전히 사람들에게 소비되고, 플랫폼 상에서 경제적 가치를 생산해낸다. 과거에는 ‘상속’이라 하면 부동산, 예금, 물리적 유산에 국한됐지만, 이제는 ‘클릭’, ‘공유’, ‘디지털 존재감’이 자산으로 환산된다. 누군가의 콘텐츠가 다시 조회되고, 팔로워가 기념 콘텐츠를 공유하며, 고인의 사진과 목소리가 NFT로 발행되고 경매되는 시대다. 이 새로운 유산의 형태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죽음을 해석하게 만든다. 더 이상 죽음은 끝이 아닌 또 다른 ‘디지털 생애의 시작점’이 되었고, 기술은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실질적 도구가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망자의 이름으로 돌아가는 이 거대한 수익 구조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2. 유튜브·SNS·NFT – 플랫폼별 사후 수익화 구조의 실제
사망자의 디지털 자산 중 유튜브는 가장 직접적인 수익 구조를 가진다. 고인이 생전에 제작한 영상은 알고리즘에 따라 계속 노출되며, 광고 수익이 자동으로 발생한다. 고인의 이름이 뉴스에 오르거나 팬덤이 다시 움직이면 조회수가 급증하고, 이는 AdSense 수익으로 연결된다. 유튜브가 허용하는 ‘브랜드 계정’의 경우 관리 권한을 유족에게 이전할 수도 있어, 고인의 영상 자산을 보존하고 운영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다. SNS는 직접 수익 구조는 없지만 간접적 경제적 가치를 지닌다. 예를 들어 수십만 팔로워를 가진 고인의 인스타그램 계정은 기념일마다 추모 콘텐츠를 올리며 팬덤을 유지하고, 굿즈 판매나 외부 링크 유입 등을 통해 수익 활동이 가능하다. 일부 유명인의 계정은 공식 재단이나 법인이 운영하며 브랜드 협업, 캠페인 등으로 연계되기도 한다. NFT는 보다 구조적으로 수익화가 가능한 형태다. 고인의 예술작품, 목소리, 생전 기록 등을 디지털 토큰으로 발행하면, 희소성과 블록체인 인증을 기반으로 높은 거래가가 형성된다. 특히 로열티를 설정해두면 2차 유통이 이루어질 때마다 제작자(혹은 유족)에게 자동 수익이 귀속되도록 할 수 있다. 이처럼 유튜브, SNS, NFT는 각각 다른 방식으로 고인의 디지털 흔적을 경제적 자산으로 전환시키고 있다.
3. AI 고인의 상업화 – 기술과 기억, 윤리의 경계선
디지털 유산의 가장 최근 흐름은 AI 기술을 활용한 ‘고인의 재현’이다. 고인의 목소리, 표정, 말투를 학습한 인공지능이 실제 인물처럼 복원되고, 그 결과물이 콘텐츠로 활용되는 일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가상 인터뷰, 다큐멘터리 내레이션, 추모 메시지 등은 AI 고인이 주체가 되어 전달된다. 그러나 이는 윤리적으로 민감한 지점을 건드린다. 고인의 실제 의사와 무관한 콘텐츠가 만들어질 가능성, 사망자의 신념이나 삶의 태도와 반하는 상업적 활용, 남겨진 유족의 감정적 충격 등은 모두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또한 수익이 발생할 경우, 그 수익의 귀속 주체가 누구인지도 명확하지 않다. AI가 생성한 콘텐츠의 저작권은 제작자에게 있는가, 아니면 고인의 데이터 제공자인가, 혹은 유족인가? 법적 근거가 불분명한 이 상황은 기술의 발전 속도를 법과 윤리가 따라가지 못하는 전형적인 사례다.
실제 사례도 이미 등장하고 있다. 2021년, 방송인 김주혁의 목소리와 표정을 복원한 AI 기반 추모 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는 감동과 동시에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생전 모습을 고스란히 재현한 AI 김주혁이 “잘 지내고 있지?”라고 말할 때, 유족과 팬들은 눈물을 흘리면서도 ‘이것이 정말 고인이 원했던 방식일까’라는 질문을 남겼다. 해외에서는 브루스 윌리스가 본인의 디지털 아바타를 광고에 사용하도록 상업적 권리를 판매했고, 영화 <로그 원>에서는 이미 고인이 된 배우 피터 커싱의 얼굴을 CG로 재현해 등장시키기도 했다. 이처럼 AI 고인은 단지 기술이 아니라, 고인의 정체성과 기억이 다시 상품이 되는 지점이며, 이는 단순한 추모를 넘어 ‘디지털 부활’이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사회적 논쟁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생전에 고인이 그러한 활용에 대해 명시적으로 동의했는지 여부가 불분명한 상황에서는, AI를 통한 재현이 고인을 기리는 방식인지, 혹은 상품으로 다시 소비하는 과정인지에 대한 기준조차 명확하지 않다. 기술은 고인을 ‘되살릴 수 있다’고 말하지만, 우리는 과연 그를 존엄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AI 고인의 상업화는 단지 기술 문제를 넘어서, 기억의 권리와 추모의 윤리, 유족의 정서적 권한을 다시 정의하게 만드는 전환점에 서 있다.
4. 규범을 위한 제안 – 법, 플랫폼,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
이제 필요한 것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기술을 둘러싼 규범의 정비다. 첫째, 국가 차원에서는 디지털 유산 상속법과 AI 고인 관련 법제화가 시급하다. 유튜브 채널, SNS 계정, NFT가 상속 대상이 되는지, AI 콘텐츠가 어떤 조건에서 상업화될 수 있는지 명확한 법적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권리문제를 넘어, 사망 이후의 정보와 이미지가 어떻게 통제되고, 어떤 기준으로 활용되는지를 명시하는 ‘디지털 존엄’ 개념의 확립으로 이어져야 한다.
둘째, 플랫폼 기업은 단순히 서비스 제공자로 머무를 것이 아니라, 사망자 계정에 대한 사후 처리 지침과 운영권 이전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 브랜드 계정 전환, 유족 인증 시스템, AI 사용 동의 여부 등을 투명하게 공개할 필요가 있으며, 생전 설정 가능한 ‘디지털 유언’ 기능도 보다 적극적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현재 구글과 페이스북은 제한적이나마 ‘사망 후 계정 관리자 지정’ 기능을 제공하고 있지만, 이는 대부분의 플랫폼에선 여전히 미비하다.
셋째, 유족의 권리 또한 보호받아야 한다. 사망자의 콘텐츠가 상업적으로 활용될 경우, 유족에게 그 사실을 통보하고, 일정한 초상권 및 퍼블리시티권에 기반한 권리 보장이 필요하다. 특히 고인의 이미지가 AI로 복원되어 상업 콘텐츠에 등장하는 경우, 유족의 동의 여부는 법적으로 명시되어야 하며, 수익 분배에 대한 기준도 정해져야 한다.
디지털 유산이 단지 수익의 도구가 아닌, 기억과 애도를 함께 담는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기술, 법, 사람이 함께 균형을 이루는 사회적 합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고인의 이름으로 벌어들이는 수익이 단지 금전적 이익이 아니라, 기억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남을 수 있도록, 제도와 윤리가 함께 가야 할 때다. 이 과정은 단지 사후 정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의 미래를 설계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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