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생애의 끝 – ‘망자 계정’에 대한 플랫폼의 태도
현대인은 생전의 대부분을 온라인에서 살아간다. 이메일, 사진, 메신저, 동영상, 검색 기록까지, 우리 삶은 수많은 계정과 데이터로 구성되어 디지털 공간에 저장된다. 하지만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난 뒤, 그가 남긴 온라인 흔적은 어떻게 될까? 온라인 플랫폼은 사용자 개인의 죽음을 어떻게 인지하고, 언제 그 존재를 잊는가?
놀랍게도 대부분의 플랫폼은 죽음을 인식할 수 있는 기술을 갖고 있지 않다. 사람의 부재는 단순히 ‘로그인이 없는 상태’로 간주되며, 일정 시간이 지나면 해당 계정은 비활성화되거나 삭제 대상이 된다. 이 시점은 사용자가 사망했다는 사실과는 전혀 관계없이 설정된 기술적 시간 규칙에 따라 자동 실행된다. 그 결과, 사망자의 계정은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채 조용히 삭제되거나, 수년간 방치된 채 시스템의 외곽에 남아 있게 된다.
문제는 이러한 방식이 인간의 죽음을 기억하거나 애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술 시스템은 감정이 없고, 죽음도 이해하지 않는다. 플랫폼이 사용하는 삭제 기준은 실질적인 ‘망각의 시간표’로 작동하며, 우리는 이러한 기술적 구조 속에서 죽음을 잊히도록 방임하고 있다. 이 구조는 결국 ‘디지털 존재’라는 개념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인간은 온라인에서 언제까지 살아 있는가, 그리고 기술은 그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
플랫폼별 데이터 보관 기한 – 구글, 페이스북, 네이버의 사후 정책 비교
각 플랫폼은 사망자의 계정에 대해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구글의 경우 ‘비활성 계정 관리자’ 기능을 통해 사용자가 생전에 설정해둔 조건에 따라 사후 처리가 가능하다. 사용자가 설정한 기간 동안 로그인이 없으면, 지정한 사람에게 데이터를 넘기거나 계정을 삭제할 수 있도록 조치한다. 그러나 이 기능을 사용하지 않은 경우에는, 유족이 직접 구글 측에 사망 증명서와 법적 서류를 제출해도 접근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페이스북은 ‘추모 계정’이라는 독특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유족이 사망 사실을 증명하면, 기존 계정을 추모 계정으로 전환해 생전의 콘텐츠를 그대로 보존하면서도 타인의 접근은 제한한다. 원할 경우 계정을 완전히 삭제할 수도 있다. 이는 사망자의 흔적을 일정 기간 보존하면서도 사적인 영역으로 전환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광고 기반 플랫폼이라는 특성상, 고인의 데이터가 백엔드 서버에 여전히 존재하거나 활용될 가능성은 남아 있다.
네이버는 상대적으로 폐쇄적인 접근 방식을 취한다. 원칙적으로 사망자의 계정에 대한 접근은 불허되며, 유족은 계정 삭제 요청만 할 수 있다. 네이버는 일정 기간 로그인 기록이 없는 계정을 ‘휴면’으로 전환하고, 이후 자동 삭제한다. 이 보관 기한은 약 1년으로 알려져 있으며, 별도 설정이 없는 이상 생전의 자료는 복구가 불가능하다.
이러한 차이는 기업의 철학과 법률 환경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미국 기반 기업은 사용자의 선택권을 강조하고, 한국 기업은 개인정보 보호를 최우선으로 고려한다. 그러나 공통점은 있다. 사망자의 의사가 명확히 남아 있지 않은 경우, 플랫폼은 대부분의 결정을 스스로 내리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는 ‘디지털 생애’의 종결이 기술의 재량에 달려 있음을 보여준다.
삭제인가 보존인가 – ‘디지털 유언장’이 필요한 시대
우리가 점점 더 많은 삶을 온라인에서 보내는 만큼, 죽음을 준비하는 방식도 변화하고 있다. 전통적인 유언장이 집, 예금, 보험을 나눴다면, 오늘날에는 이메일 계정, 사진 백업, 유튜브 채널, SNS 계정도 정리 대상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온라인 흔적이 사후에 어떻게 처리될지에 대해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고 있다.
실제로 디지털 유언장을 작성한 사람은 극히 드물다. 2024년 미국의 한 조사에 따르면, 디지털 상속을 사전에 설정한 사용자는 전체의 8%에 불과했다. 이는 죽음에 대한 회피뿐 아니라, 기술 자체에 대한 이해 부족, 혹은 이러한 기능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결과, 유족은 이메일을 열람하거나 가족사진을 복구하려고 해도, 법적 장벽과 보안 절차에 막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사망자의 계정에 접근하기 위해선 엄격한 법적 절차가 요구되며, 경우에 따라선 법원의 명령이 필요하다. 그런데 고인이 생전에 아무런 의사를 남기지 않았다면, 그 계정은 결국 자동 삭제되고 만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수천 장의 가족사진, 수년간의 메모, 지인과의 마지막 대화 기록은 누구에게도 전달되지 못한 채 사라진다.
따라서 디지털 유언장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어야 한다. 구글의 비활성 계정 관리자, 애플의 디지털 유산 연락처, 페이스북의 추모 계정 설정은 모두 그 초석일 뿐이다. 우리는 데이터로 이뤄진 두 번째 삶을 살고 있으며, 그 삶의 끝 또한 스스로 준비해야 한다. 죽음을 기술에게 맡기는 것은 곧, 우리의 마지막 흔적을 시스템이 판단하게 하는 일이다.
온라인 플랫폼은 언제 죽음을 ‘잊는가’ – 기억의 종료와 책임의 유예
플랫폼이 사망자의 존재를 ‘잊는’ 시점은 기술적으로는 계정 삭제 시점일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왜 그리고 누구의 판단으로 죽음을 잊는가이다. 대부분의 플랫폼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활동이 없는 계정을 시스템적으로 삭제하거나 비활성화한다. 이는 기술의 효율성과 개인정보보호를 이유로 정당화되지만, 그 실질은 ‘기억의 포기’에 가깝다.
더 나아가, 이러한 망각은 법적 공백 위에서 일어난다. 세계 대부분의 국가는 사망자의 데이터 권리에 대해 명확한 기준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유럽은 일부 국가에서 고인의 데이터 접근을 상속권으로 인정하지만, 한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는 여전히 사망자의 계정을 ‘본인만 접근 가능한 정보’로 간주한다. 이는 유족의 감정적 권리나 기억권보다, 사망자의 프라이버시를 형식적으로 더 우선시하는 결과를 낳는다.
그러나 사망자의 데이터는 단순한 개인정보 그 이상이다. 그것은 공동체의 기억이며, 가족의 역사이고, 사회문화적 맥락이 담긴 삶의 흔적이다. 이를 기술이 일방적으로 삭제하고, 기업이 약관으로 통제할 수 있는가? 디지털 공간은 사적인 소유이면서도 공적인 기억의 장소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언제 죽음을 잊을 것인가’는 단지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윤리와 법적 책임의 문제다.
결국 플랫폼이 죽음을 잊는 시점은, 데이터를 버리는 순간이 아니라, 그 존재의 의미를 더 이상 인정하지 않을 때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사회가 ‘기억할 권리’와 ‘잊지 않을 의지’를 포기할 때 도래한다. 우리는 더 이상 물리적 장례만 준비해서는 안 된다. 디지털 장례 역시, 이 시대의 시민으로서 감당해야 할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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