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디지털 유산의 생명 연장 – 유가족이 운영하는 SNS 계정의 등장
오늘날의 SNS 계정은 단순한 개인 기록을 넘어서, 디지털 자아의 일부로 기능하고 있다. 생전에 남긴 사진, 영상, 생각, 댓글 하나하나가 고인의 삶을 담은 흔적이며, 사망 후에도 온라인상에 그대로 남는다. 이러한 디지털 자산을 어떻게 다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고민이 깊어지고 있는 가운데, 유가족이 사망자의 SNS 계정을 유지하거나 운영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페이스북에서는 고인이 된 딸의 계정을 ‘추모 계정’으로 전환한 뒤, 생전에 자주 찍었던 풍경 사진과 함께 짧은 글을 남기는 어머니의 사례가 있다. 인스타그램에서는 남편이 떠난 후에도 여행지에서 그가 자주 하던 포즈를 재현한 사진을 올리며 “여전히 당신과 함께하고 있어요”라고 남긴 부인의 계정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이러한 행위는 단순한 계정 관리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고인을 추억하고, 기억을 공유하며, 죽음을 받아들이는 치유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SNS는 유가족에게 있어 디지털 묘비이자 대화의 창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동시에 이러한 계정 운영은 고인의 사후 권리와 개인 정보, 계정의 주체성 문제로 확장된다. 단지 사랑과 그리움으로만 설명될 수 없는 복합적인 윤리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2. 사랑인가 사칭인가 – 고인을 대신해 말하는 행위의 윤리
사망자의 계정을 유가족이 대신 운영한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고인의 이름으로 콘텐츠를 계속 발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문제는 그 내용이 어디까지 ‘고인을 위한 것’이고, 어느 순간부터 ‘유가족을 위한 도구’로 바뀌는지 불분명하다는 데 있다. SNS 글 하나, 댓글 하나가 생전에 고인의 가치관과 정서에서 벗어나는 순간, 그것은 추모가 아니라 사칭이 될 수 있다.
실제로, 고인의 계정을 통해 사회적 캠페인에 참여하거나 정치적 의사 표현을 한 사례도 존재한다. 일부 계정은 고인을 기억하기 위한 의도에서 벗어나, 가족의 상업적 목적(예: 책 출간, 기념 제품 판매 등)에 활용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계정을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은 복잡해진다. 그 계정이 진정 고인을 기리는 공간인지, 아니면 가족의 감정적·경제적 해소 도구인지 판단이 어려워지는 것이다.
더 나아가, 윤리적 경계가 흐려질수록 ‘가장된 존재’가 등장할 수 있다. 예컨대, AI를 통해 고인의 말투나 언어 스타일을 학습한 후 SNS에 자동 글을 생성해 올리는 ‘디지털 복원’ 시도는 점점 현실이 되고 있다. 이러한 행위는 고인의 명예와 정체성을 심각하게 침해할 소지가 있으며, 계정을 통해 살아있는 듯한 존재감을 만드는 것이 과연 도덕적으로 타당한지에 대한 질문을 남긴다.
3. 고인의 계정은 누구의 것인가 – 사후 프라이버시와 법의 공백
많은 플랫폼에서는 사망자의 계정 처리 방식에 대한 내부 정책을 갖추고 있다. 예를 들어, 페이스북은 유가족 요청에 따라 ‘추모 계정’으로 전환할 수 있으며, 고인이 지정하지 않은 경우에는 일부 정보만 열람 가능하다. 구글 또한 사용자가 생전에 ‘Inactive Account Manager’를 설정해두지 않았다면, 가족이 모든 데이터를 열람하거나 삭제하기 어렵다. 이는 고인의 프라이버시와 디지털 권리를 존중하려는 취지이지만, 유가족 입장에서는 답답한 제약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법적으로는 사망자의 SNS 계정이 누구의 소유인지 명확하게 규정된 바가 없다. 대부분의 플랫폼 약관은 계정이 ‘일신전속적 권리’에 해당한다고 보고, 타인에게 양도하거나 상속할 수 없다는 원칙을 고수한다. 이는 곧, 유가족이 아무리 가까운 존재라 할지라도 계정을 운영하거나 접근하는 것이 법적으로는 ‘무단 접근’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특히, SNS에는 고인이 생전 숨기고자 했던 민감한 정보나 비공개 콘텐츠가 존재할 수 있다. 가족이라도 이 모든 내용을 열람하거나 노출할 권리가 있는가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윤리적 판단의 영역에 머물러 있다. 우리는 고인의 계정을 마치 ‘물건’처럼 다루지만, 그것은 생전 그 사람의 정체성과 기억, 감정이 축적된 ‘디지털 자아’라는 점에서 훨씬 복잡한 존재다. 이 계정을 다룬다는 것은 단순한 기술적 접근 이상의 책임을 요구하며, 사후에도 고인의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유가족의 접근은 사랑이라는 명분을 지녔을 수 있지만, 때로는 고인의 침묵을 해체하는 행위가 될 수도 있다.
4. 추모인가 침해인가 – 남겨진 자의 책임과 기억의 윤리
고인의 SNS 계정을 유지하는 행위는 때로 치유와 위로의 수단이 되지만, 그 행위가 반복되고 장기화될수록 주변인과 사회 전체에 복합적인 정서적 영향을 미친다.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는 그 계정을 보며 위안을 받지만, 또 다른 이는 지속적인 상기와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고통을 겪을 수도 있다. 더 나아가, SNS 팔로워나 지인들에게는 고인의 존재가 여전히 ‘온라인상에서 살아있다’는 착시를 줄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추모의 윤리가 단순한 개인감정에 국한되지 않는 이유다.
윤리적으로 볼 때, 가족이 고인의 계정을 운영하는 행위는 ‘기억의 책임’을 동반한다. 기억은 개인의 것이기도 하지만, 공동체의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고인의 계정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 ‘살아 있는 자의 욕망’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고인의 의지와 사회적 합의에 따라 조율되어야 한다. 고인을 잊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망각의 윤리를 지키는 것 또한 필요하다. 기억은 무조건 보존해야 할 가치가 아니라, 때로는 잊힘 속에서 존엄을 지켜야 할 영역이기도 하다. 영원한 기억이 항상 선(善)은 아니며, 고인의 명예나 정체성을 보호하기 위해 선택적 망각이 더 적절한 경우도 있다.
SNS는 죽음을 저장하는 새로운 방식이 되었지만, 그것은 동시에 ‘누군가의 죽음을 우리가 어떻게 다룰 것인가’라는 윤리적 시험대가 되었다. 이제는 단순히 기술적 접근이 아니라, 삶과 죽음, 기억과 소유, 사랑과 책임에 대한 총체적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디지털 애도의 시대에는, 누군가를 기억하는 방식 또한 그 사람의 삶을 존중하는 방식이 되어야 하며, ‘기억의 권리’와 더불어 ‘침묵의 권리’ 역시 함께 고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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